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톰 행크스 (문단 편집) === 스타덤에 오르다 === 그 다음해에 주연을 맡은 코미디 수사물인 드라그넷(1987)이 흥행에 성공했다. 1988년에 개봉한 [[빅]]도 흥행에 성공했는데, 천만 달러를 넘긴 제작비로 만들어져서 그에게 처음으로 북미에서만 1억 달러 대박 흥행을 거둬들여 흥행배우로 떠오르게 되었다. 이 작품에서 행크스의 배역은 [[해리슨 포드]]에게 먼저 섭외가 갔는데, 노안이라는 이유로 [[톰 행크스]]가 최종 캐스팅된 것이었다. 빅 덕분에 행크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.[* 수상자는 [[레인 맨]]의 [[더스틴 호프먼]].] 물론, 이 시절에도 흥행 실패작도 있었는데, 코미디 영화 <펀치 라인>(1987)에서 주연으로 나왔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했다.[* [[오멘]] 원작자로 유명하고 영화 각본으로 활동하던 데이비드 셀쳐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. 이 영화 이후 셀쳐는 영화감독을 그만두고 각본가와 소설가로 활동하게 되었다.] <펀치 라인>도 평단의 평은 좋은 영화였다.<펀치 라인>은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고뇌를 그린 드문 작품으로 행크스의 진지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.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관객들이 톰 행크스에게 기대한 것은 어둡거나 진지한 드라마가 아니었다는 점이 영화의 패인이었다. 그래도 곧바로 그 다음 해인 1989년에 주연을 맡은 두 작품인 《[[유령 마을(영화)|유령 마을]]》과 《[[터너와 후치]]》는 흥행에 꽤 성공했다. 이렇게 코미디 영화에 주로 출연하다가 1990년에 다시 비 코미디 영화 두 편의 주연을 맡았는데, 하필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. 먼저 [[브루스 윌리스]], [[멜라니 그리피스]], [[모건 프리먼]] 같은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데다 거장 [[브라이언 드 팔마]]가 감독한 <허영의 불꽃>이 평단의 호평속에도, 4,700만 달러의 제작비 절반도 못 거둔 1,500만 달러 흥행으로 참패했다. [[스티븐 스필버그]]가 제작한 볼케이노도 2,500만 달러로 만들어져 3,900만 달러를 좀 벌어 흥행은 실패했다. 다행히 1991년 《[[그들만의 리그(영화)|그들만의 리그]]》와 1993년 [[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]]이 북미에서만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에 성공하면서 행크스는 최고의 코미디 & 로맨스 배우로 우뚝 설 수 있었다. 그러나 행크스는 이제 더 이상 로맨스물과 코미디만 할 수 없다고 결심한 뒤 들어오는 섭외는 모두 거절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